산재에 있어서 업무관련성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입증책임이 원고 측에 있는 만큼 주장 • 입증이 중요합니다. 근로자의 자살과 업무관련성에 관하여 우리 대법원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2019. 5. 10. 선고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대법원 2019. 5. 10. 선고 2016두59010 판결 >
- 사실관계
가. 망인(원고의 배우자)는 갑 회사에서 약 20년 동안 근무하였고, 자살하기 전까지 A팀장으로서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망인은 갑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시장과 갑 회사 사장으로부터 여러 번 표창을 수여받았고, 재직기간 동안 징계받은 적이 없었으며, 평소 밝고 유쾌했고, 동료들과도 원만히 지냈다.
나. 갑 회사는 2010. 2.경부터 1년간 감사를 받아, 약 17억 상당의 손실을 입은 사실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았다. 이에 망인을 포함한 담당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조사가 이루어졌고, 갑 회사에 망인 외 직원들에 대해 정직처분을 하라는 취지의 문책요구서가 보내졌으며, 그 사본이 망인에게 교부되었다.
다. 망인은 매우 억울해하면서 재심을 청구하려 하였으나 주위 만류로 포기하였고, 문책 요구를 받은 직원들 중 망인을 제외한 직원들은 정직처분을 받았다가, 이후 자체 위원회로부터 감봉처분을 받았다.
라. 망인은 감사가 있기 전까지 불안, 우울 등으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나, 2011. 11.경 감사결과를 알게된 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였으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하였고 사무실에서도 자주 넋이 나가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죽기 전 2주 동안 망인은 자리에 잘 앉아 있지도 않고 업무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동료 직원에게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 취급하며 욕하는 것 같다, 수군거리는게 느껴진다’는 등의 말을 계속 반복하였다. 또한, 망인은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은 상태였는데, 징계로 승진에서 누락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했고, 회사로부터 구상권 청구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불안해하였다.
마. 망인은 회사로부터 문책요구서 사본을 교부받은 후부터 불면이 더욱 심해졌고, 배우자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등의 말을 반복하였고, 매일 누르던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밤새 소파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담배를 사러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다시 담배를 사러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바. 망인은 2011. 11. a. b.시경 산에 간다고 하면서 다시 집을 나갔고, 그 다음 날 오전 등산로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 이 사건에 관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신경외과 전문의는 우울증 증상이 심화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진단하였다.
- 관련 법리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 질병 •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 따라서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후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법원의 판단
망인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아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이와 달리, 자살 전 망인의 업무나 근로조건에 변경이 없고 업무가 과도하지도 않았으며 망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동료 직원들과 비교해 볼 때 망인에게만 우울증을 초래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 원심판결을 파기).
- 맺음말
이 판례의 법리는 이전 판결들에도 보이던 것입니다. 다만, 이전(제가 포스팅 했던 글에도 자살관련한 내용이 있었습니다)의 사례는 감정노동 등 업무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업무 중 자살사고 등이 발생한 경우였으나 이 사안은 ① 사무직으로서 과도한 업무라고 여겨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점, ② 업무나 근로조건에 큰 변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 ③ 감사 결과 이루어진 징계와 그로 인한 불안감(승진누락, 구상권 청구 등의 불이익)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 ④ 자살 직전에 보인 증상 등이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음에도 평소 일상에서의 모습과 대비하여 사실 인정을 한 점 등을 볼 때,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는 법리 자체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판단됩니다. 사회가 바뀌듯, 법리도 바뀌지만, 그 법리를 적용하는 사실관계 등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양지하시고 피해구제를 위한 주장 • 입증이 중요하다는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