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산재사고와 의료사고는 객관적 관련성 인정되는 한 공동불법행위

 

돈이 돈을 벌기도 하는 시대지만, 그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써야하는 사람들은 매일이 고되다. 오죽하면 ‘급여가 통장을 스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그 비싼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생업의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여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불편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행은 겹쳐오기도 한다. 산재사고로 인해 발생한 상해 치료를 받던 중 의료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산재사고로 인한 상해 치료 중 발생한 의료사고의 법적책임의 근거는 무엇일까. 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4다52576판결에서는 1차 산재사고와 2차 의료사고가 그 환자에 대한 민사상 공동불법행위이고,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견련성(관련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판례 사안은 이렇다. 망인은 A회사에서 프레스기계 작업을 하던 중 양손이 위 기계에 압착되어 좌, 우측 각 제1, 2수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였고(1차 산재사고), 피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지절단 및 접합수술을 받았다. 피고병원 의료진은 망인에게 수액을 과다 투여한 후 환자 상태를 제대로 경과관찰하지 못하였고, 망인은 심장을 둘러싼 심낭에 삼출물이 가득 차 심장이 눌려 심폐기능 장애로 인해 사망하였다(2차 의료사고).

 

 

법원은 이 사건 2차 의료사고가 전신기능이 저하된 망인에게 수액을 투여함에 있어 그 용량을 철저히 지키고 투여 후에도 제대로 관찰하며 환자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보아 과다 수액 투여로 인한 부작용의 기미가 보이면 즉시 중단하거나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병원의 과실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산재사고로 인하여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치료를 받던 중 치료를 하던 의사의 과실 등으로 인한 의료사고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생겨 손해가 확대된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은 손해와 산재사고 사이에도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재사고와 의료사고가 각기 독립하여 불법행위의 요건(과실, 인과관계, 악결과발생)을 갖추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위법하게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한 것이 인정된다면, 두 사고 간에는 공동불법행위가 성립되어 공동불법행위자들이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다만 이 경우에도 통상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와 같이 피해자의 전체 손해에 대하여 산재사고 가해자와 의료사고 가해자의 책임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가해자가 늘어났다고 하여 모든 손해를 전보받을 수 있다거나 배상을 받는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반대이다. 산재사고와 의료사고는 각각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렵고 두 사고 간의 객관적 관련성까지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나 대리인 입장에서 까다로운 소송에 속한다.

 

산업현장, 의료현장(이 또한 누군가에는 산업현장이다) 모두 사고와 친해져서는 안되는 곳들이다. 예방만이 최선이겠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는 또다른 과실이 이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이미 발생한 뒤라면 그 책임을 인정받기 위해(혹은 면책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