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한 사안에서, 업무와 자살로 인한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기초사실

가. 원고의 배우자인 망인은 1992. 1. 6. A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라 한다)에 은행원으로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2013. 1. 17. B지점장으로 부임하여 지점의 여‧수신 영업, 고객 관리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사건 회사는 2013. 2.경부터 몇 차례여신 실적 등이 부진한 지점에 대하여 대책 수립을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는데, B지점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B 지점의 전체 대출금 중 약 8.5%를 차지하던 거래처인 C회사는 대출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나. 망인은 2013. 5. 27. 정신과의원에 내원하여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비기질성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무기록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많았다. 죽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집에서 목도 매 봤다(보름 전?).”는 등의 망인의 진술 내용이 적혀 있다. 망인은 2013. 6. 3. 같은 의원에 다시 내원하여 진료 받으면서 자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다. 망인은 2013. 6. 13. 출근하였는데, 직원들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좋지 않아 보였으며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망인은 11:10경 “점심 약속이 있다.”며 회사 밖으로 나갔고, 13:50경 원고에게 전화하여 “나 지금 원두막에서 약 먹어서 죽는다. 곧 갈거다.”라고 말하였다. 망인은 14:12경 서울 서초구 D지역에 있는 텃밭 원두막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을 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라. 망인은 자살 전 2장의 유서를 남겼는데,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주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였고, 집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자신의 성격상 문제점과 함께 자녀들에 대한 훈계로서 “아들들아, 너희들은 커서 절대로 영업현장에서 근무하지 마라. 아빠의 성격상, 그리고 너희들도 아빠의 성격을 닮아서 아빠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니 절대 영업사원은 되지 마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마. 망인을 진료했던 정신과의원의 주치의는 “망인은 내원 당시 우울감, 자살사고, 수면장애, 불안감,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을 호소하였으며 중증의 우울증을 보이고 있었고, 지점장 발령 이후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호소하였다. 망인은 2013. 6. 3. 마지막 진료 당시 우울감, 불안정한 정동, 의욕 저하, 불안감 등으로 인하여 정싱적인 인식능력과 행위선택능력의 장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고, 제1심 법원의 삼성서울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에 의하면,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기록상으로 망인은 은행에 근무하면서 다소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편이고, 업무 실적과는 관련이 없지만 일 자체에 대해서도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며, 진료기록상 직업적인 스트레스와 재산 관련 언급이 나타나고 있어서 직업적 또는 업무적 영향이 망인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망인은 주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따라서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이 가장 높은 위험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망인은 사망 당시에 신체 증상과 불안감, 우울감, 불면 등의 증상이 동반되었을 수 있겠으나, 최근까지 회사에 출근하였으며, 일상생활에서 평상시와 다르게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 혹은 이에 영향을 받는 행동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살 당시에 심신상실 혹은 정신착란 상태로 보기는 어렵겠다.”는 소견을 밝혔다.

바. 유족(원고)은 근로복지공단(피고)에 망인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였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부지급결정처분을 하였다. 유족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결정에 대하여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하자 유족들은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대법원은 망인에게 우울증이 발현된 점 및 그 발전 경위에 망인의 유서내용 및 자살 과정 등을 종합하여, 망인이 우울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설시하였다.

나. 구체적으로, 망인이 B지점장으로 부임하여 지점의 여‧수신 영업 등을 총괄하게 되면서 실적 부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시받기도 하고, 주요 거래처로부터 대출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받는 등으로 인하여 영업업무 및 실적에 관하여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위와 같은 중압감으로 인하여 망인은 지점장으로 근무한지 약 4개월여 만에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진단받고, 정신과 상담과정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업무스트레스와 자살 가능성 등을 언급하다가 자살 가능성을 언급한지 10일 만인 2013. 6. 13. 출근하여 자살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 있기에, 망인은 B 지점장으로 부임한 후 영업실적 등에 관한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를 겪게 되었고, 스스로 정신과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계속된 업무상 부담으로 중압감을 느낀 나머지 그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시하였다.

3. 맺음말

피고 근로복지공단측은 망인이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거나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는 등의 항변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와 같은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고,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인바 없다고 하더라도 망인의 자살로 인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본 판결은 유족들이 망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하여 동료직원들의 진술 등을 구하고, 생전에 치료받았던 진료기록부 등을 제출함으로써 진료기록감정촉탁을 거치는 등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고, 그로 인해 자살로 인한 사망임에도 업무상 스트레스라는 객관적 요인 외에 그러한 객관적 요인을 받아들이는 근로자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의 개인적인 취약성 등의 주관적 요인도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근거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