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으로서 현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도, 변호사로서 만나는 의료사건은 특히 안타깝다. 악결과가 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악결과란 구체적인 과실로 인하여 나쁜 결과가 발생하였음이 입증된 것을 말하지만, 의료사건에 관하여 환자측이 악결과로 표현하는 상황은 누군가가 죽거나 다친 것이기에 법적인 판단에 앞서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변호사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러한 마음에 적극적인 의견을 표하는 것은 가족, 친구 등 주위사람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변호사로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말을 보탤 경우 당사자는 기약 없는 송사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더욱이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의료진의 구체적인 의료과실을 주장 ․ 입증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인과관계까지 모두 입증되어야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현행 법체계에서 환자의 치료과정에 관한 기록을 확인하지 않고 공감만 한 채 소송을 시작한다면 지난하고 상처뿐인 시간들이 이어진다.

 

치료가 필요하여 받았는데 치료 전에 예측하였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후유장해가 남았다면 의료과실을 확신해도 될까. 후유장해를 입은 환자의 앞으로의 삶이 내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후유장해는 그 자체로 과실의 증거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 대법원은 그러한 판단을 경계한다. 의료행위에 의하여 후유장해가 발생한 경우, 그 후유장해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는 때에도 당해 의료행위 과정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거나 또는 그 합병증으로 인하여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후유장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다76290 판결)는 것이다.

 

 

판례 사안에서는 복강경에 의한 질식 자궁적출술 등을 받았고 그 후 환자가 요관손상 등의 후유장해를 입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 증상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후유장해가 남았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과실에 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체의 신비’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듯, 어떠한 경우에는 직접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도 알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진의 채무는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채무에 속한다. 즉, 의료행위라는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의료인은 그 자체로 채무를 완전 이행한 것이 되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과실이 있었는지에 관하여 진료기록부등을 통해 주장 ․ 입증해야 한다.

 

 

소송 절차에선 정의가 아닌 증거가 이긴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냉정한 현실이다. 이길 것 같은 사건이 풍파를 만나기도 하고, 지난해 보이던 사건이 깔끔하게 정리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중요한 지점들에는 명확한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다.

 

발생한 결과만을 놓고 사건을 파악하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그 결과 또한 안좋은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라고 할 수 있을만큼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난 후유장해에 이르는 악결과가 발생하였다고 생각되는 경우, 의료행위 과정에 관하여 진료기록부등을 통하여 분석한 후 제일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